그 곳에 내가 있었다. (상) – 소년영웅 창간기념 공모전 대상작

그 곳에 내가 있었다.

저자 : 권효순 (아동문학가, 한국문인협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체육시간이 되었는데 아랫배가 너무 아파 체육을 할 수 없었다. 허리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할 수 없이 보건실에 가서 누웠다. 한 시간 정도 잠이 들었다 깼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 세상에, 말로만 듣던 첫 생리가 시작된 것이다. 보건 선생님의 도움으로 잘 처리는 했지만 놀란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마침 체육 시간이 끝났다며 짝꿍 지은이가 나를 데리러 왔다.

 

“어머! 너 생리 시작했어? 웬일, 웬일!”

“야, 호들갑 떨지 마, 다른 애들도 다 하잖아. 너만 알고 있어.”

“그래, 걱정 마, 남자 애들 알면 창피해.”

 

나보다 더 입을 다물 것처럼 얘기 하더니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우리 반에 소문이 다 났다. 계속 아랫배가 아프고 몸 상태가 별로라 지은이가 집까지 바래다 준다며 따라왔다. 지은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무슨 큰일이나 생긴 것처럼 얘기를 했다.

 

“아줌마, 예은이요, 오늘 그거 시작했어요.”

 

결국 ‘너만 알고 있어’는 우리 반과 우리 집, 아마 지은이네 집까지 소문이 다 났을 거다. 저녁에 아빠는 꽃바구니와 커다란 곰돌이 인형을 사들고 들어 왔다.

 

“웬 서프라이즈 파티?”

“우리 딸 축하해!”

“엄마, 아빠한테 벌써 얘기 한 거야?”

“그럼, 이건 축하해야 할 일이야, 우리 딸이 이제 숙녀가 되는 건데.”

 

나는 컨디션이 영 아닌데 아빠와 엄마는 싱글벙글이다. 내 몸의 변화를 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뭐 이리 난리인지. 싫지는 않지만 좀 민망하다.

 

“첫 생리는 어른이 되는 첫 과정 중 하나야. 그러니 당연히 축하 해야지. 무엇보다 이제부터 더욱 네 몸을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해.”

 

엄마의 성교육이 시작되었다.

 

“엄마, 보건 시간에 다 들어서 나도 잘 알아. 누가 덤비면 태권도로 탁 탁! 엄마 나 검은띠잖아.”

 

내가 태권도 발차기 흉내를 내며 엄마 아빠를 안심시켰다.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야.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니까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엄마 아빠한테 말해야 돼.”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부모 앞에서는 항상 아기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무슨 이야기든 언제나 엄마 아빠의 잔소리 같은 걱정으로 마무리된다.

 

“학교 폭력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더라. 얼마 전 뉴스에서 초등학생이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다 아파트서 떨어져 목숨을 끊었대.”

“저런, 얼마나 힘들었으면……..예은아, 문제가 있으면 꼭 얘기를 해.”

 

엄마의 걱정에 아빠가 장단을 맞춘다. 왜 이렇게 얘기가 흘러갔는지, 딸내미 첫 생리 축하파티는 오늘도 역시 학교폭력에 대한 엄마의 걱정으로 마무리 되었다.

 

얼마 후 엄마가 걱정했던 얘기가 우리 반에서 일어났다. 자살 사건은 아니지만 실제 학교 폭력이 내 주위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수영이가 친구들의 폭력을 피해 전학을 가기로 한 거다.

 

“야, 전학 갈 정도야?”

“응, 그동안 수영이한테 애들이 빵셔틀도 시키고 나중에는 돈도 주지 않고 별별 물건을 다 가져오라고 그랬대.”

 

수영이네는 우리 동네에서 큰 마트를 하고 있다. 지난 미술대회 날 자신의 꿈을 그릴 때도 수영이는 마트 사장이 될 거라고 말해 아이들이 웃었던 기억이 났다.

 

“걔네 엄마가 어제 학폭위(학교폭력위원회) 열어달라고 하려다 그냥 외가집 동네로 전학 보내기로 했대.”

 

수영이가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

애들은 수영이 이름을 부른 적이 거의 없다. 불러도 ‘제로콩’이라며 별명을 불렀다. 이름에 ‘영’이 들어가서 제로(0), 머리에 든 게 없어 제로, 눈치도 없어서 제로, 메주처럼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메주콩을 더해 ‘제로콩’이라고 부르는 거다.

별명이 다 그렇다. 좋은 별명은 거의 없다. 나도 ‘예은’, 예수님의 은혜라고 불리면 참 좋겠지만 내 별명은 ‘날땅’이다. 땅콩처럼 작은데 여기저기 안 끼는데 없이다 껴서 날아다니는 땅콩, 줄여서 날땅이라 부르는 것이다.

거의 아이들이 별명을 하나씩 가지고 있지만 대놓고 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영이는 아이들이 이름 대신 ‘제로콩’이라 불렀다. 우리 반 단체 카톡방에도 수영이의 이름은 없었고 제로콩이 카톡에 등장했다.

아이들은 수영이가 카톡방을 나가도 계속 초대하여 수영이를 놀리며 괴롭혔다. 수영이는 이런 상황에 남의 일인 듯 언제나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 속에 같이 맞장구 쳤던 내가 있었다. 막상 전학 갈 정도로 힘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화가 났다.

 

“걔는 왜 그 정도 될 때가지 말 한마디 안 했대?”

“수영이가 말해도 우리가 들어 주지 않으니까 아예 말 할 생각을 못한 거 아닐까?”

“아휴, 답답해. 엄마 아빠도 있고, 선생님도 있잖아.”

 

아빠 엄마가 무슨 일 있으면 꼭 말 하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밟으면 아프다고 말해야 돼.”

 

갑자기 윤지가 나를 꼬집었다.

 

“아야! 야, 갑자기 왜 꼬집어?”

“이렇게 하라는 거지? 누군가 꼬집으면 아야! 하며 소리치라고. 하하”

“야~ 그래! 무조건 참는 시대는 지나가갔어. 자기의 감정을 말하는 게 중요하다구.”

“그러다 싸가지 없는 애가 되어 또 왕따 당할 텐데.”

“못 본 척 방관했던 우리도 잘한 건 없어.”

 

우리들은 미안한 마음에 이말 저말 마구 쏟아냈다. 어쩌면 우리는 무관심으로 공격 아닌 공격을 한 거나 마찬가지다.

교무실 가셨던 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들어오시더니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렀다. 보통 때는 ‘안 온 사람?’ 하시며 결석만 체크 하셨는데 오늘은 수영이 때문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선생님이 안경테를 자꾸 올린다. 우리 모두에게 불똥이 튈 것만 같다. 눈치 빠른 우리들은 선생님을 향해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

 

“수영이가 전학을 갈 것 같은데, 가기 전에 수영이의 좋은 점을 생각나는 대로 종이에 써서 선물로 주면 좋을 것 같다.”

 

선생님은 출석을 다 부른 다음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로 A4 용지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시며 말했다.

늘 수영이의 뒷담화만 하고 SNS나 채팅방에서 수영이의 저격수가 되었던 우리들은 수영이의 좋은 점을 하나씩 적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수영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얘기도 안하고 지냈지만 수영이의 좋은 점을 쓰기 위해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 급식 때 반찬 투정 안 해요. 내가 안 먹는 반찬 먹어 줘서 좋아요.

– 청소할 때 요령 피우지 않고 혼자 잘해요.

– 잘난 척을 안 하고 조용해요.

– 여자애들끼리 있을 때 무거운 거 잘 들어줘요.

– 자기가 못써도 애들한테 물건을 잘 빌려 줘요.

– 체육시간에 체육준비물을 미리준비해요.

………..

 

없을 것 같았는데 생각을 바꾸니 하나 둘씩 수영이의 좋은 점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은 오늘 수영이를 괴롭힌 아이들에게 벌을 주지 않을 거다. 수영이 부모님께서 그 아이들을 용서하셨기 때문이고, 만약 벌을 준다면 너희 모두를 벌 줘야 하니까.”

 

느닷없는 선생님 말씀에 나는 깜짝 놀랐다.  왜 우리 모두를 벌 줘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한 번도 수영이를 놀린 적이 없는데. 선생님은 계속 말씀을 이어갔다.

 

“선생님을 포함 해 우리 모두가 수영이를 힘들게 한 공범자거든. 수영이를 왕따 시켰거나 옆에서 같이 거들고, 오히려 더 부추기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 사람 등등 이런 걸 전문용어로 가해자, 가

해 조력자, 가해 강화자, 방관자라고 부르지.”

 

갑자기 법정에서 재판 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중에 자기가 하나도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

 

손을 드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나도 손을 들 수가 없었다. 수영이가 왕따 당하는 걸 알면서 지켜보기만 했고, 고자질쟁이라는 말을 듣게 될까봐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우리 반 애들 모두가 수영이가 ‘왕따’를 당하는 걸 알면서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 우리 반에 제로콩은 있었지만 수영이는 없었다.

성경에 ‘잘못한 여인에 대해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거라’라고 하는데 아무도 던지지 못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어서 계속 – 그 곳에 내가 있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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