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형님 (세계동화 – 한국편)

 

옛날 호랑이 담배 필 적 일입니다.

의견 많은 나무꾼 한 사람이 깊은 산속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길도 없는 나무숲 속에서 크디큰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며칠이나 굶주린 듯싶은 무서운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 큰 입을 벌리고 오는 것을 딱 앞으로 맞닥뜨려 놓았으니, 소리를 지르니 소용있겠습니까 달아를 나자니 뛸 수가 있겠습니까! 꼼짝달싹 못 하고 고스란히 잡혀먹게 되었습니다.

악 소리도 못 지르고 그냥 기절해 쓰러질 판인데, 이 나무꾼이 원래 의견이 많고 능청스런 사람이라 얼른 지게를 진 채 엎드려 절을 한번 공손히 하고

 

“에그 형님! 형님을 인제야 만나 뵙습니다그려.”

 

하고 손이라도 쥘 듯이 가깝게 다가섰습니다. 호랑이는 형님이란 소리에 어이가 없던지

 

“이놈아, 사람놈이 나를 보고 형님이라니 형님이 무슨 형님이냐.”

 

라고 합니다. 나무꾼은 시치미 딱 떼고 능청스럽게

“우리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너의 형이 어렸을 때에 산에 갔다가 길을 잃어 이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던고로 죽은 셈만 치고 있었더니, 그 후로 가끔가끔 꿈을 꿀 때마다 그 형이 호랑이가 되어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울고 있는 것을 본즉, 분명히 너의 형이 산속에서 호랑이가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모양이니 네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거든 형님이라 부르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셨는데, 이제 당신을 뵈오니 꼭 우리 형님 같아서 그럽니다. 그래, 그동안에 이 산속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하고 눈물까지 글썽글썽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호랑이도 가만히 생각하니 자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그것도 모르겠고, 나기도 어디서 났는지 어릴 때 일은 도무지 모르겠는고로 그 사람 말같이 자기가 나무꾼의 형이었을 지도 모를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어머니를 그렇게 오래 뵙지 못하고 혼자 산속에서 쓸쓸히 지내온 일이 슬프게 생각되었습니다.

 

“아이고, 얘야, 그럼 어머니께서 지금도 안녕히 계시냐?”

 

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예, 안녕하시기야 하지만 날마다 형님 생각을 하고 울고만 지내십니다. 오늘 이렇게 만났으니 어서 집으로 가서 어머님을 뵈오십시다.”

 

하고 나무꾼이 조르니까

“얘야, 내 마음은 지금 한숨에라도 뛰어가서 어머님을 뵈이고 그동안 불효(不孝)한 죄를 빌고 싶다마는 내가 이렇게 호랑이탈을 쓰고서야 어떻게 갈수가 있느냐……. 내가 가서 뵙지는 못하나마 한 달에 두 번씩 *도야지(豚, 돼지의 옛 말. 여기에서는 산돼지를 뜻함.)나 한 마리씩 갖다 줄 터이니, 네가 그 대신 어머님 봉양이나 잘하여라.” 합니다.

 

그래 나무꾼은 죽을 것을 면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있었더니 딴은 정말로 한 달에 두 번씩 꼭 초하루와 보름날 밤에는 뒤꼍 울타리 안에 도야지가 한 마리씩 놓여 있는고로 밤사이에 호랑이가 어머님 봉양하느라고 잡아다두고 가는 것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 또 가을이 지나고 또 겨울이 지나게 될 때까지, 꼭 한 달에 두 번씩 으례히 도야지를 잡아다 두고 가더니, 그 후 정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후로는 영영 초하루와 보름이 되어도 도야지도 갖다 놓지 않고 만날 수도 없고 아무 소식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 웬일인가 하고 궁금하게 지내다가 하루는 산에 갔다가 조그만 호랑이 세 마리를 만났는데, 겁도 안 내고 가만히 보니까 그 꼬랑지에 베 헝겊을 매달고 있었습니다. 하도 이상하여 그것이 무어냐고 물어보니까 그 작은 호랑이들도 아주 친하게

“그런 게 아니라요. 우리 할머니는 호랑이가 아니고 사람인데, 그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우리 아버지가 한 달에 두 번씩 도야지를 잡아다 드리고 왔는데,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그 날부터 우리 아버지는 굴 밖에 나가지도 않고 먹을 것을 잡아오지도 않고 굴속에만 꼭 들어 앉아서 음식도 안 먹고 어머니 어머니 부르면서 울고만 계시다가 그만 병이 나서 돌아가셨답니다. 그래 우리들이 흰 댕기를 드렸답니다.” 합니다.

아무리 한때의 거짓 꾀로 호랑이보고 형님이라 하였던 일이라도 그 말 한마디로 말미암아 호랑이가 그다지 의리를 지키고 효성이 다한 일에 감복하여 나무꾼도 눈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이》 4권 1호, 192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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